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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2 번역시 고유명사 풀어쓰기의 문제

마린이 해병으로 번역된게 뭐가 어떻다는 건가?




0.
본문에서 말하는 언어적 사대주의의 문제는 분명 잘못된게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 외의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지요.

일단, 여기서 문제시 하는 번역들은 대부분이 '고유명사'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몇 분야에서 돈 받고 일을 해 본 번역가 나부랭입니다만,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되어온, 가능하면 무조건 풀어쓰는 번역 형태가 반드시 옳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번역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분야이고, 실제로 어떤 식으로 처리해도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찬반논란은 끊이질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히며, 개인적인 생각임도 밝힙니다.



1.
스타2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부분 특정 장비, 혹은 유닛의 '이름' 들입니다. 현실에서 예를 찾아보면...

한국 공군의 전투기들을 보면...

F-4팬텀, F-16팰콘, F-15이글 등, 대체로 원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유독 F-5만은 '제공호'라는 우리 말 이름이 있네요.

F-4유령(악령, 원령등), F-16매(송골매, 새매등), F-15독수리 등으로 고쳐야만 옳다고 느껴지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을겁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실의 용례는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학자나 직업 번역가들 간에도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2.
와우의 한글화가 '고유명사를 풀어쓰는 번역이 옳다'는 분들의 호평을 받는것으로 압니다. 와우의 한글화에 대해서 제 입장은 원작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의 '실수'를 제외하면 긍정적인 편입니다만, 실은 와우 역시 약간의 선을 그어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종족명'의 부분이죠. 가령 Goblin은 요마가 아니라 고블린이고, Gnome은 땅의 정령이 아니라 노움이고, Elf는 요정이 아니라 엘프입니다. 드레나이(스펠링을 모르겠음)를 어거지로 '드레노어人'이라고 고치지도 않았습니다. 이걸 고칠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실제로 저런식으로 고치는 경우도 존재하거든요. 와우의 경우도, 신경 쓸 거리가 더 많아지긴 하겠지만 고치려고 들면 못 고칠것도 없는 부분입니다.

서문에서 마치 저는 '고유명사 번역을 반대한다' 처럼 읽힐까봐 미리 밝히지만, 저는 바꾸고 말고를 떠나 '일관성'을 최우선 사항으로 칩니다. 이런 부분에서 와우는 거의 완벽한 우등생이죠. 또한 고블린이며 엘프를 원어대로 놔둔 '선' 또한 마음에 듭니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무조건 국어 단어로 치환이 옳다고 보시는 분들은 이 부분을 아쉬워 하실지도요.

아무튼 저는 요마니 밤요정이니 피요정이니 식인귀니 하는건 그다지 보고싶지 않음.




3.
번역에 있어서 정말 머리 깨지도록 고민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라면, Warhammer 40000, Dawn of War의 확장팩 윈터어설트를 들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확장팩중 윈터어설트와 다크크루세이드의 현지화에 직접 참여했었는데, 윈터어설트의 경우 '사서 고생'을 한 경험때문에 기억에 남는군요.

제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신종족 임페리얼 가드의 '가드'를 어떻게 번역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기존 번역 상태는 '근위대/근위병'으로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guards는 그 뜻만 있는게 아니지요. 대표적으로 '경비'의 의미가 있고, '해안 경비대'지 '해안 근위대'는 아니니까요. 실제로 설정상 의미를 살펴보면 임페리얼 가드는 '제국근위대'가 아니라 '제국국방군'정도의 번역이 타당합니다.

그리하여 고민했습니다. 번역이란게 문장을 몽땅 살펴줘야 하기 때문에, 바꾼다고 '찾아 바꿈' 으로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미 90퍼센트가 완성된 상태라... 진짜로 갈등되더군요. 거의 반나절의 고민 후, 저는 몽땅 '임페리얼 가드'로 통일하기로 결정하고 이틀간 죽을 고생을 사서 했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결과적으로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꽤나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다만 미처 보지 못해 실수한 부분도 있긴 함).

번역 하다보면, 진짜로 1:1로는 절대로 딱 맞는 단어를 찾기 힘들고, 어거지로 번역하면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고유명사의 대표격 하면 '사람 이름'이 있습니다. 다른건 다 건드려도, 이름은 진짜 안 건드리는게 번역자들 사이에서는 속 편한 관례입니다. 별명 말고, 말 그대로 성과 이름이요.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뜻글자인 한자 이름을 가지지만, 그 훈에 대해서는 이름 지을 때 말고는 그다지 신경 안 쓰는거랑 같은거지요.

하지만 몇몇 신념 있으신 번역자분들은 과감하게 이 선도 뛰어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욕을 먹죠. 언어사대주의니, 느낌이니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글 읽는데 불편하거든요. 아마 이건 문화적 차이도 있겠습니다만은.

기술적으로도, 이름을 번역하기 시작하면 이거 답이 없어요. 진짜 손 댈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거든요.

최근 2편이 나와 화제가 되고있는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로봇을 보면, 이름이 옵티머스 프라임 입니다. Optimus는 라틴어로 최고라는 뜻이에요. Prime은 영어로 같은 뜻으로, 라틴어 Primus에서 온 말인데, 의미는 '첫번째'란 뜻이죠. 어이쿠 그런데 사람 이름으로 쓰이면 그 뜻은 '첫번째 태어난 남자아이', 즉 '일남이'가 되네요. 실제로 고대 로마 인물들 이름으로 심심찮게 나오는 이름 중, 프리무스와 퀸투스는 각각 일남이, 오남이 란 뜻이지요. 물론 그 사람들이 실제로 첫째나 다섯째였을 가능성은 이름과는 무관합니다. 그냥 관습적으로 흔히 사용된 이름이니까요.

아무튼 누가 이름 지었는지 몰라도, 창조자는 진짜로 얘가 킹왕짱이 되기를 원했나봅니다. 학창시절에 놀림좀 받았을 듯요. 자, 옵티머스 프라임 한 번 번역해 보실 분?

그냥 여담이지만... 옵티머스 프라임 이란 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왜 라틴어+영어의 유의어를 두 개 붙여놨을까. 무슨 의도일까. 영어 사전에는 primus도 나오는데 왜 옵티머스 프라이머스가 아닐까'라며 작명자의 의도에 대해 되도 않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직업병이에요.



5.
그리고 단어 자체에 문제는 없는데, 특정 문화권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다 보니 이래저래 손을 봐야하는 경우도 있어요.

가령 '괴뢰'나 '인민'이란 단어를 쓰면 어디론가 잡혀가서 다시는 못 돌아올것 같다는 생각이 들것도 같다는 것이지요.



5-1. 그리고 단어야 어찌됐건, 문장 쓰는 방법이 언어마다 다르다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네요.

'역습의 샤아'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저렇게 직역하는건 아무 무리가 없는데 한국어는 저런 식으로 '의'를 붙여 쓰지 않거든요.




6.
3에서 다루었던 내용의 연장인데, 한국어로 바꾸라면야 바꾸겠지만 안 바꾸는게 나은 경우들이 진짜 생각보다 많지요.

제가 스타2의 지역화(로컬라이징) 방침에 불만을 가진 이유는 '단어만 국어로 바꾸면 땡이냐?'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시즈탱크를 공성전차로 바꾸는게 쪽팔린 일이냐... 고 트랙백 본문 쓰신분이 말씀하셨는데 저는 종니 어색하네요. siege에 성을 공격한다라는 뜻이 있긴 하지만 이건 그저 성을 공격하는 전술에 '포위'가 기본이 되기 때문이고, 주된 의미는 '포위'쪽에 가깝거든요. 참고로 굳이 한국어로 바꿔야 하겠다면 사전에는 공위圍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존나 딱딱한(덤으로 구닥다리) 군사 관련 서적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단어네요. 공성전차는 '단어만 치환하면 땡이다' 라는 먹튀 번역가들의 전형적인 오역의 예라고 하겠고, 포위전차 정도가 낫겠네요. 공위전차는 더 이상하고;

배틀크루저의 경우도... 밀덕들은 보통 순양전함을 선호하지요. 저도 순양전함이 익숙하긴 한데 여기에 대해서는 밀덕 이야기가 되므로 일단 줄이겠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전투하지 않는 순양함은 없으므로 순양전함이 맞다'는 유명한 '정리'가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순항하지 않는 전함도 없'으므로 절대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사료됨(농담입니다).

콜로서스는 '거신'이라고 한 모양인데 드레드노트, 저거노트, 콜로서스 등은 이렇게 쉽게 번역해 버리면 좀 속상한 다의적인 단어들이지요. 에휴... 뭐 그럼.

번역은 '그냥 아무 단어나 자리 바꿈하면 되는, 사전 볼 줄 알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거든요. 좋은 번역자의 진가는 문장의 자연스러움 뿐 아니라 단어 선정에서도 드러나지요.




7.
6과 구분이 쉽지 않지만, 단어선정이 잘못되어서 '번역자 병신새끼 뭔소린지 모르겠네 그럴거면 아예 그냥 원어를 쳐 써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여기에 관해서는 정말 유익한 글을 많이 올려주시는 모 님의 '오류시리즈'에서 주옥같은 껀수를 본적이 있는데, Papal states를 '파팔국' 이라고 번역한 경우입니다. 참고로 Papal은 '교황'을 뜻하는 Pope의 형용사형입니다. 교황령이란 뜻이겠지요.

그리고 예로부터 '병신번역사건' 하면 게임계가 단연 탑입니다. 이제는 후속작을 볼 수 없는(아마도?) 고전명작 위저드리6의 국내 정발판 메뉴얼에 보면, 종족 Elf를 '개구쟁이'라고 번역해 놨었어요. 좀 짱인덧. '단어 치환만 한 번역'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참고로 사전 찾아보면 elf에는 개구쟁이니 장난꾸러기니 하는 뜻이 있긴 있음.




8.
그리고... 바꿀 수 있는건 바꾼다, 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저라면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을 바꿀것 같습니다. 제 외국인 친구중에 Archer라는 성을 가진 녀석이 있습니다. 제가 '자 이제 석궁수를 보여줘' 라고 놀리곤 합니다만, 제가 번역하는 문장에 Archer라는 사람이 있다면 '궁수'라고 번역해야 할까요? 저라면 안 그럴겁니다. Smith나 Baker에게 '가업은 대장장이/제빵사이신가요?'라고 안 묻는것과 비슷한 이유로요.

'그건 안 바꾸는게 당연하잖아' 라고 생각되시나요? 그런데 '당연히 바꿔야지' 라고 생각하는 번역자들도 있거든요. 결국 기준의 문제라는 이야깁니다.

만약에 현실에서 그게 당연한 일이라면 저도 일관성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어색하더라도 부지런히 작업하겠지만, 글쎄요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실제 병기 이름인 톰캣이나 렙터를 수코양이나 맹금이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데 굳이 게임에서 쓰는 용어는 기를 쓰고 바꿔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뭐 저는 권위에 약한 사람이라 권위있는 학회나 정부에서 번역 지침이 나온다면 아마도 그걸 따르겠지 싶습니다만, 말머리에 적었듯 여기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9.
중국어와 일본어를 보면, 중국같은 경우는, 사용 문자의 문제도 있겠지만 자문화 중심주의 때문에 한국같으면 그냥 외래어로 처리될법한 단어에도 정부시책으로 인위적인 대체어를 마련하는 형태입니다. 가령 center같은 경우 '중심'이라는 단어를 쓰더라구요.

일본은 정 반대로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로 외래어를 표기하는 카타가나가 난무합니다. 아마 일본어 공부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관해 한 번 쯤 컬쳐쇼크를 느껴보셨지 않나 싶네요. '이런걸 왜 카타가나로 쓰는거야!' 정도의.

한국어는 여러모로 그 중간 정도네요. 제가 한국의 경우가 제일 낫다고 생각하는건 아마 한국인이고 그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겠습니다만.





10.
몇몇 분들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문화 사대주의자'라는 표현까지 쓰던데요, 제가 보기에 그런 분들은 반대측 입장 사람들에게 '자문화 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입니다. 어찌 그리 서로 편협하고 배타적으로 상대를 받아들이시는지. 제가 양비론을 진짜 싫어하는데 그래도 양 극단에 서신 분들을 보면 좀 안타깝네요.

그냥 번역도 좀 해보고, 언어에 관심이 많고, 스타2도 기대중인 사람으로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새벽에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좀 난잡한 글이 되었네요.

by 금린어 | 2009/06/30 02:48 | 잡소리... | 트랙백(5) | 핑백(1) | 덧글(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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