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으로 '의학적 예외'를 가진 사람의 동병상련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자기 자식은 빼돌려? 박원순 ㄱㄱㄲ 박주신도 ㄱㄱㄲ' 라고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생각했던 점이 좀 부끄럽네요.

저는 무릎 관절에 문제가 있습니다. 슬개골 구조가 남들과 다르다고 하네요. 장시간 운동시 관절에서 발열, 염증, 통증이 발생합니다.

덕분에 군 간부의 꿈은 접어야 했지요. 당시 관절 상태가 어땠냐면, 계단 내려오다가 힘이 풀려서 굴러떨어지는걸 옆에 동기가 잡아줬을 정도였어요. 100미터 전력질주를 위한 추진력도 내지 못하는 무릎을 억지로 움직이다보니 통증 단계를 지나 힘도 안들어가고 감각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 경향이 지금도 있어서 족구같이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공놀이는 전혀 못함.

그런데 당시 군 병원이나 교관들이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소위 '뺑끼'를 부린다는 명목으로 디지게 욕을 먹었었습니다. 당시 19살 짜리가 스트레스 받아서 혈뇨가 나왔었으니 말 다했죠. 이를 악물고 반년을 버텼지만 결국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 후 대체 내 다리는 왜 그런가 싶어서 비싼 돈 들여 MRI를 찍었는데 '연골에 공동이 있지만 생활에 불편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판정을 받고 납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내가 근성이 없구나 뭐 이런거죠.

그렇게 대학을 다니다가 현역 사병으로 군대를 갔는데(눈이 안 좋아 2급) 유격훈련중에 일종의 마비현상을 겪으며 쓰러졌습니다. 결국 병원에 갔는데, 훈련소 정형외과는 어떻게 훈련좀 빼 보려는 인간들로 넘치는 곳입니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안에서 '너 인터넷에서 훈련 빼는법 보고 왔지?' '그냥 알배긴거야 파스 바르면 돼' 뭐 이런 말들이 들리더라고요.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저도 욕좀 먹을줄 알았는데, 군의관님이 관절 주변을 이래저래 촉진하시더니,

'너 왜 가입소 기간에 앞에 안 나왔냐'

라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군의관도 한명 불려와서 둘이서 관절 만지작 하면서 여기가 어떻고 저기가 어떻고 akdskdflak가 bjklsdjfaklsd하다는 둥.

그 후 설명 듣기를 너는 슬개골이 어떻고 저떻고 해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몸이 아니다, 통증이 상당히 심했을텐데 지금까지 뭐 한거냐, 너같은 애는 군대 빼 줘야 하는데 규정에 없어서 빼줄수가 없다 뭐 이런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때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내가 과거에 '아픈 척'을 한 게 아니었으며 '근성 없는 놈'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눈물이 왈칵 나오더군요. 그 후로 연골 문제는 완치하는 방법이 없다, 통증 완화하면서 평생 견뎌야 한다, 노인들이 겪는 관절염 통증이 지금 온거다 이런 소릴 들었더랬지요. 

제가 겪는 입장에서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비가 오면 누가 손을 넣어서 관절을 만지는 느낌

이 납니다.

하튼 그 후에 어찌어찌 항생제와 진통제를 비롯한 약을 먹고 훈련 적당히 빠지면서 무사히 군생활을 했습니다. 신병때는 열외고 뭐고 없었는데 관절 문제가 알려지면서 결국 몸 쓸일 별로 없는 파견부대로 옮겨가서 제대할 때 까지 있었네요.

이러한 경험을 한 입장에서, 박주신씨의 마음고생이 상당히 심했을것 같으며, 이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해명할 기회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님 걱정 장난 아니셨을것 같네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군대간 사이 제가 무릎 아파하는게 꿈에도 나왔다고 하니;

하튼 결백함이 밝혀진 이상 박주신씨를 낙타라고 놀리는 등의 행동은 수꼴좌빨중도를 떠나서 피해야 할 일이라 생각되네요. 명백하게 병역면탈의 의혹이 있다면 계속 비난했겠지만, 지금은 동병상련이 느껴집니다.

by 금린어 | 2012/02/22 17:14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8)

은하영웅전설의 은하제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가?

은하영웅전설 번역 일기 - 1. 여명편



은영전의 완역이라는 위업을 이루고 계신 Saga님의 블로그에서 역자님과 잠시 토론을 나눈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 다른 분의 리플이 달려서, 다른 분 블로그에서 리플에 리리플이 자꾸 길어지는게 보기 좋지 않을것 같아서 트랙백 하여 글을 새로 써 봅니다.




0.
경력을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지만 일단 번역밥 먹어본 입장에서 가상의 세계를 가정하는 극중에 등장하는 언어는 대부분 가상이며, 작가의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역자는 함부로 현대, 혹은 근대 이전의 특정 언어임을 특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가령 극중에 나온 외국어 문장의 문법이 틀렸다면(아마 실제로는 작가의 지식적 한계가 원인이겠지만), 이는 작가의 지식과 무관하게 기획의도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 그런 언어였다' 라는 식이지요.

물론 이는 이후 작가가 확실한 언급을 하고 정오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1.
우선 전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은 제국에서 사용되는 고유명사 등은 현대 독일어를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루돌프 대제가 제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귀족계급에게 옛 게르만계 성씨를 하사한다는 말도 본문에 나옵니다. 뭐 일단 그냥 봐도 중학생 때 부터 '이건 독일식 독법을 상정했구나' 라는걸 알 수 있을정도였으니 뭐.

마인 카이저 등의 예 처럼 언어 사용 쪽에서도 단편적으로 이런 경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일본 문자의 표기 한계 때문에 von이 훤이 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공개된 알파벳 표기법을 참고하거나 전례를 참고해서 '원래 무슨 소리를 표현하려고 했구나'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지 한국어나 일본어나 독어 발음의 정확한 표기는 불가능하죠;
(여담이지만 제가 외국어 공부하면서 가장 놀란건 ㅎ와 ㅋ의 경계가 모호한 언어가 무지하게 많다는 것이었다능)



2.
그렇다고 이것이 은하제국이 독일어를 사용하는가? 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저 현대 독일어에 가까운 표기법과 독법을 가진 가상의 언어라고 일단 가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단 '이제르론' 혹은 '이젤론' 요새에서 알 수 있듯, 엄밀히 따지면 독일어 독법을 완전히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문외한이 보기에 그럴듯 해 보이는 정도이고, 사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같은 변태적인 집요함이 필수적인 소설이 아니라면 이정도로 충분합니다. 독일식 고유명사가 멋지다고 인식되기 때문인지(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함) 국내외의 환타지 소설 등에서 딱 이런 정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작가의 언어적 지식 한계 때문인지 기획의도인지는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대 독일어를 상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거죠. 일단 제국어를 '독일어와 유사한 독법과 표기법을 사용하는 가상의 언어'라고 가정하는 쪽이 보다 융통성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3.
그렇다면 (리플 달아주신 狂人Y君님 말씀대로)자유행성동맹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2에서 짚어본 '독일어식 표기, 독법을 사용하므로 은하제국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는 부분을 감안하면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맹측 인명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기본적으로 영어식 표기를 기본으로 하되 인명을 따온 현대 언어들의 표기를 존중'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뭐 가령 동남아시아 계통 발음이나, 프랑스계 발음도 나오고 '아스타테' 같은 예도 있죠(이건 일단 그리스식 발음이라고 할수 있으려나).

한편으로 '비바 데모크라시'는 분명 영어식 표기죠.
(비바란 환호/외침은 이어 서어 불어 등등 안쓰는 나라가 없는듯 ㅎㅎ 단 데모크라시는 영어죠)

그럼 이걸 보고 '베트남어식 표기를 하니 베트남어를 씀' 혹은 '불어식 표기를 하니 불어를 씀' 이라고 할수는 없지 않느냐? 라는 것이 제 의견이고, 2에서 독일어 주장에 대해 제기한 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대강 '유난히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존중적인 행태를 가졌지만 일단 영어에 가까운 가상의 언어' 정도로 가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좀 광의로 보자면 오늘날의 다문화 다민족 국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4.
다음으로 '정황상 추리' 부분입니다. 뭐 이 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고 문화의 발전상이 현실과 유사하다는 가정하의 흥미위주 개드립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과연 은영전 작중 배경보다 약 500년 전, 말기의 은하 연방은 무슨 언어를 썼을 것인가?

체제는 완전히 바뀌었어도 영토와 국민이라는 측면에서 연방을 계승한 은하제국이 독일어를 쓴다고 가정한다면, 은하연방 역시 독일어, 혹은 그 모체가 되는 언어를 썼을 것입니다.
(어떻게 인류 통합 과정에서 모든 언어가 사라지고 순수한 독일어만 남게 되느냐 따위의 논의는 무의미하겠죠)

그러나 연방의 군인으로 등장하는 클레랑보 등의 인명을 보자면 이 역시 간단하게 동의할 수 있는 가정은 아닙니다. 다른 예가 좀 적긴 하지만 적어도 독일어에서 나올 수 있는 이름은 아니라고 봅니다. 연방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일단 공용어A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루돌프 대제가 연방 뒤엎고 제국 건국하면서 공용어A에서 현대 독일어로 언어를 바꾸었다? 이는 더더욱 무리가 가는 가정입니다. 원작에 보면 통화를 크레딧에서 마르크로 바꾸면서 도량형까지 바꾸려고 했으나 돈이 존내 든대서 포기했다... 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언어를 갈아치우는 것은 도량형 변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단한 작업입니다. 게다가 그 바꾸는 언어가 현재 실사용자가 전혀 없는 언어라면 이는 불가능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렇게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는 공용어B라고 가정합니다. 공용어B는 극중의 주된 배경이 되는 우주력 800년 전후의 제국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모태가 되는 언어임이 명백합니다.

한편 알레 하이네센이 이끄는 '구 제국민'들은 1만광년의 원정을 통해 동맹을 건국하게 됩니다. 이 시점은 공용어B가 사용된지 약 150년 정도가 지난 시점(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입니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고 문화권이 통일이 된 미래 인류지만 항상 변하는 것이 언어인 이상 공용어B 와도 상당히 다른 언어를 쓰고 있겠죠. 이 시점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공용어 C라고 가정합니다.

즉 이 공용어 C에서 처음으로 제국어와 동맹어의 분화가 발생합니다.

이후 양측이 조우하여 만성적인 전쟁상태에 빠져들 때 까지 약 100년 이상의 문화적 단절기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약 150년의 전쟁(일종의 적극적 교류)과 망명자 유입 등으로 양측의 언어는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극중 현재' 기준의 '제국어'와 '동맹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공용어A(은하연방어) -> 공용어B(초기 제국어) -> 공용어C(중기 제국어) -> 현 제국어
                                                                                         -> 현 동맹어
                                                                                                                -> 현 페잔어?


거칠게 표현하면 대강 이런 표를 그릴 수 있지 싶습니다. 양측 언어의 분화는 대충 25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는 독일어로 발전하고 하나는 영어로 발전했다는 것은(2, 3에서 말한 예외 상황을 빼더라도) 작품 내적인 근거만 가지고 살펴보기에도 좀 억측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작가의 다른 언급이 없다면 말이죠. 작가의 언급은 물론 절대 진리입니다. 언어발달사고 나발이고 작가는 신이므로 진화를 거꾸로 탈수도 있죠.

그러나 아마 현실 세계라면 심하면 좀 생소한 방언, 가볍다면 영국어와 미국어 정도의 차이를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여담이지만 고지독일어 저지독일어의 분화는 길게 잡으면 약 1500년 가까이나 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5.
그리고 다른 작품 내적인 근거를 좀 대자면, 극중에서 제국과 동맹이 명백하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명백한 흔적은 찾기 힘듭니다.

우선 양이 사기쳐서 이제르론 요새 해먹을 때 공작원으로 들여보낸 쉔코프가 '유창한 제국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묘사는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제국어와 동맹어가 완전히 다르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현실로 치면 남파된 북한 공작원이 '문화어' 대신 '교양인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하는 것과 비슷할수도 있는거죠.
(남북의 언어는 시작이 다릅니다. 때문에 분단 후 불과 60여년이 지났음에도 그 차이가 상당하죠-교류가 없다는 점도 있지만-)

그러나 양이 포로수용소에서 제국군 포로들과 이야기 할 때나, 객장 메르카츠를 만날 때나, 황제를 접견할 때나, 이제르론 요새에서 포로교환이 이루어지거나 할 때(+페잔 자치령에 율리안이 파견될 때) 딱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외교상황이라면 통역의 존재가 전개상 생략되었을 수도 있지만, 포로들과의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이고 황제를 만났던 것은 독대가 아니었던가요? 뭐 기계적인 통역기를 너도나도 가지고 다닐수도 있기야 하겠군요.

이런 측면에서 양측의 언어는(+페잔어도)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가지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6.
제 생각에는, 은하연방에서 사용된 공용어는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현대의 여러 언어들의 영향이 절충된 가상의 언어이며(문자는 알파벳) 이를 기준으로 보면 제국어나 동맹어나 방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제국은 '게르만 빠'인 루돌프 대제와 제국 황실의 영향도 있고 해서 독일어의 영향이 많이 갔고...

동맹은 초기 성립 과정에 제국 귀족들은 빠져 있으니 옛 연방의 다채로운 문화 영향이 병존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는 정도?

한가지 이상한 점은 루돌프 대제는 귀족 한정으로 옛 게르만계 성씨를 나누어 줬고 '구 제국민' 신분에서 도망쳐 동맹을 건국한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데, '극중 현실'을 사는 제국의 평민들이나(가령 볼프강 미터마이어) 망명자(가령 카스퍼 린츠)의 이름을 보면 이들 역시 독일계 성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뭐 주류 문화의 영향으로 이렇게 변했을 수도 있겠고 뭔가 직접적인 개명사업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7.
장황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전부 대단한 근거 없는 추론에 불과합니다.

아마 진실은 작가가 제국을 조금 경직된, 게르만계 이름을 가진 백인 귀족들이 통치하는 전제주의 제국과 보다 자유롭고 다문화적 기풍을 가진 민주주의 동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부차적인 요소들을 활용한 것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언어적인 오류 부분은 작가의 기획의도라기 보다는 작가의 언어지식의 한계일테고, 거기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겠죠. 실제로 독자 입장에서 그 이미지는 충분히 전달이 되고 있으니까요.

리플에도 적었었지만 작가는 몽골계 조상을 가진 우람프가 전통적으로 성을 가지지 않은 것 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몽골에서 성씨가 사라진 것은 공산주의 정권의 '일시적인' 방침에 불과하며, 전통적으로는 씨족명과 아버지 이름을 병기하는 등의 서명법이 따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성씨 되찾기 운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고요. 이들은 현실에 빗대자면 작가의 지식 한계가 가져온 가벼운 오류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소설을 보는 입장에서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은영전의 우주는 우리가 사는 우주와 전혀 다른 시공의 것이며 현실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전적인 우연이라고 해도 되니까요.

거기에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청각적인 이미지를 더해서 마치 제국은 독일어, 동맹은 영어를 쓰는 것처럼 포장해서 방영했을겁니다. 파렌하이트의 기함의 초강력 주포처럼 말이죠;

그런 만큼 '제국은 명백하게 독일어'를, '동맹은 명백하게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를 뛰어 넘은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역자 입장에서는 융통성 잃고 더욱 고민이 더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제가 장황하게 적었듯이 제국에서 현대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근거는 작중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말 작가한테 한번 물어보고 싶네요 ㅎㅎ)




8.
물론 극중 사용 언어에 대한 공식적인 어떤 코멘트가 이전이든 이후에든 있다면 본 글은 일고의 가치도 없어지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오히려 시원해질것 같습니다 ㅎㅎ 일단은 번역계에 발가락이라도 걸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때문에 책 볼때 거기 계속 신경이 쓰이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그리고 많은 부분 기억에 의존해 기록한 만큼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고려' 해 주시면서 번역을 하고 계시며 완성도 높은 은영전 완역본을 감상할 기회를 주시는 Saga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15년만의 새 판본을 보겠네요. 전 서울문화사 판은 조금 보다가 때려 치워서;

장르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한번 쯤 겪으셨겠지만 발번역 내지 분위기를 깨는 번역 때문에 괴로워 하신 기억이 있지 싶습니다. 은영전 완역본 출간이 다른 성의있는 장르 소설 번역본 출간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지금도 좋은 번역자분들은 많이 있지만요). 구체적으로는... 얼음과 불의 노래가 참;;; 일단 얼불노 5부는 신통찮은 번역본 기다리느니 나오자마자 원서 사서 읽기로 작정했답니다 ㅠㅠ


by 금린어 | 2011/03/27 00:08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12)

제주도 왕국

개인적으로 한반도 남부의 고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교과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역사는 상호간의 이해관계와 한강유역 공방이 주가 되고 다른 부분들은 일부러 찾아야지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삼국 외의 대외 관계에 대해서는 그나마 고구려의 대수 대당 전쟁은 간판급 대우를 받긴 합니다만 역사서에도 상당히 자주 나오는 '왜'의 존재와 영향력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그나마 한반도 왜 등 요즘들어 국내에서도 자꾸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논문 찾아보는 수준이 되어야지, 교양서적 수준에서 접근성은 무척 떨어집니다).

한편 가야 같은 경우 '편의상 생략'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인의 인식은 '존만한 나라가 백제-신라 국경 사이에서 깝치다 망ㅋ함ㅋ'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래도 최근들어 연구자들도 많이 늘어나고 일반 대중용 서적들도 많이 나와서 관심이 있으면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 되긴 했지만요.

그렇다면 삼국시대 이전에 있었단 마변진 삼한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 역시 '삼국시대 이전의 빈칸채우기' 정도의 비중입니다. 심지어 마한=고구려, 진한=신라, 변한=백제라는 아주 편리한 역사관을 가진 분도 봤습니다. 그러니 이 고대 소국 연합체의 운명에 관해서는 알고싶어도 자료를 찾기 어려운게 현실이죠. 저도 고등학교 졸업 기준으로 삼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삼한중 철본좌는? 변한=철은 변한다'의 수능용 암기가 전부였음. 뭐 다행히 최근에는 백제가 미처 장악하지 못한 영산강 유역의 옛 마한의 잔여 세력이나 진한과 가야의 관계에 대해서 등은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런데 한반도 본토의 지역사가 이런 취급을 받는 상황이니 제주도는 항상 아오안이죠 ㅠㅠ




제주도는 국사에서 참 특수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당히 큰 섬이고 외세의 영향 없이 독자적인 국가로 존재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강성하여 본토의 국가들의 영향을 거부한게 아니라 그냥 잊혀진;;; 것일 가능성이 크죠. 백제나 신라나 고려나 연락이 두절되다가도 바로바로 복속하는것을 보면 말입니다.

보통 탐라라고 알려진 제주도, 혹은 제주도 정치세력의 이름은 탐모라 탐진 탁라 동영주 도이 주호 등등 종류가 많다고 합니다. 즉 예전부터 주변국가들에게 알려지긴 했던것 같고(보통 저런 이름들은 자칭보다 타칭일 가능성이 높죠) 나름의 교류가 있었던것 같기는 한데 관련 자료는 상당히 빈약합니다. 고대사 연구에서 국서교환 기록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기록이 풍부한 편은 아닙니다. 다만 신라, 백제, 당 등에 단속적인 사신 방문이 있어 대략적인 당시 제주도의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를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백제-신라의 패권 변화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작년에는 TV 다큐멘터리에서 '고대해상왕국'이라 칭하며 독립왕국으로서의 탐라를 재조명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오수전이 출토되어 고대해상교역의 한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노무 오수전이 하필 왕망전이라, 정통성 확보를 위해 변경국가와의 책봉관계에 집착하던 왕망정권의 일시적인 외교사절이 가져온 선물이라는 설도 있긴 합니다. 뭐 인터넷에서 보니 왕망이 김일제의 후손이며 제주도 오수전은 몰락한 왕망 일가가 제주도로 피난오면서 가져온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여러 주변국들의 기록들, 즉 국서나 교역기록, 전쟁기록(백강전투에 탐진이 참전?) 등과 발굴 성과를 미루어 보면 고대 탐라국이 '생각보다는' 영향력 있는 독립 세력으로서 존재했다는 점을 일단 알수는 있습니다. 당회요에 따르면 7세기 제주도 인구가 8천호라고 합니다. 현대 제주도 인구가 55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인구라고 할 수는 없네요. 발굴조사에 따르면 기원전후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러 급격한 인구증가의 흔적이 보인다니 고대일본의 인구 유입과도 연관해서 연구를 해 볼수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만 역시 기록의 부재가 ㅠㅠ

한편 유물로 넘어가면 제주도는 진짜 신기한 유물유적이 많습니다.

150여기의 고인돌, 유일의 해중 고인돌.
(저는 항상 제주 뿐 아니라 한반도의 고인돌 건설자들의 의의가 너무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기록이 없다는게 가장 크지만요)
위에 말한 오수전.
딱 한곳 발굴된 옹관묘.
대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돌하르방(이스터섬 모아이와의 연관설이... ㅋㅋ)
제주도 토기(독자적인 발전양상과 원인모를 토기 집락군등)

등등이 있고, 전통문화적 측면으로 봐도 한반도 본토와는 너무도 다른 여러 문화적 요소가 '다른 나라는 다른 나라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 삼성혈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고씨 양씨 부씨의 시조가 땅에서 솟아나와 가죽옷과 활로 무장하고(명궁이야기는 빠지질 않음) 탐라국을 열었다, 라는 독자적인 개국신화입니다. 그리고 삼별초 항쟁의 경우도 제주도 토착 설화중에 삼별초를 존내 나쁜놈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내용이 있다는 점에서 국사에서의 왕조, 혹은 민족 본위적인 서술이 가지는 문제점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반도 삼국정립의 과정에 사라져간 수많은 소국들의 운명이 그러했듯, 스스로 편찬한 사서가 남아있지 않은 고대국가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제주도 같은 경우 딱히 외세의 침입도 없이 오롯하게 사실상 독립국으로 고려시대 중기까지 이어져 온 만큼 더욱 안타깝습니다. 


대체 제주도에는 오키나와 삼국시대나 하와이의 패왕 카메하메하와 같은 재미난 무언가가 왜 없는거야!


그러나 제주도에 집중된 고고학적, 역사학적 노력이 다른 지역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만큼 부족하기 때문에 장차 상황이 나아지길 바랄 수는 있겠습니다. 사실 고대 일본의 경우도 자체 사서가 없지만 한서의 국서 기록과 발굴성과를 토대로 고대국가 형성 무렵을 복원하고 있죠. 물론 일본은 한서의 기록과 연관되는 금인이라는 먼치킨급 대박 아이템이 '우연히' 발굴되었다는 엄청난 행운도 있긴 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오랜 발굴과 조사가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주도의 발굴성과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단편적으로, 각 성과에 대해서는 나름 상세한 연구가 진행되어 있지만 그러한 성과들을 연결하여 제주도의 고대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제 노력이 부족해서 못 찾은 것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떤 주장을 해도 충분한 관련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에 모험적인 연구를 시도하는 학자가 없는게 아닌가 싶네요.



라고 생각했는데,




탐라국에는 관찬사서는 없지만, 제주 고씨 가문의 독자적인 기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다는 제주도 출신 친구의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제주도 신문들을 포풍검색했습니다. 그 결과 상당히 자세한 내용들이 인용되는 것을 보고 완전 흥분했습니다. 항가항가 하면서 완전 들뜬 상태로 마우스를 클릭클릭 했죠.

이 분이 탐라국 시조 고을나 王 이라고 합니다. 오오~

이 때 모 네이버 카페에서 제주도에는 사서가 없다 라고 하는 사람에게 '탐라국 사서가 왜 없냐'며 일갈하는 분을 발견하고 쪽지로 대화를 나누어 귀중한 정보를 얻습니다.

문제의 기록의 제목은 제목이 무려 王世記 라고 합니다. 시조 고을나에서 45대에 걸친 가문의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얻게 된 문제의 왕 리스트.


오오 탐라국은 기원전 2337년에 건국되어 초대 고을나왕의 치세는 무려 131년!  2대 고건왕의 치세는 무려 430년!





이게 뭬야!









아아아 ㅠ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거 글자 그대로 믿는 분들도 꽤 많으시더군요.

그냥 이런 책도 있더라는 겁니다.


by 금린어 | 2011/03/19 19:32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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